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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책리뷰, 독후감

독서감상문/독후감 다자이 오사무의 직소(直訴)

by 유럽겉핥기 DH 2019. 8. 29.

지난 번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에 이어서 그의 또다른 소설 '직소' 독서감상문을 써 볼까 합니다.

 

 

직소. 곧을 직, 호소할 소. 규정한 절차를 밟지 않고 윗 사람에게 직접 호소함. 정말 억울하고 급박한 일을 겪었기에 절차를 거치지 않고 직접 호소하는 것. 얼마나 억울하고 중요한 일인지 한번 들여다보겠습니다.

소설 직소는 1인칭 시점으로 주인공이 나라의 관리로 짐작되는 나리에게 어떤 인물을 고자질하는 듯한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호들갑스럽게 일러바치는 주인공의 말을 듣고 있다보니 어디선가 한번쯤은 들어본 것 같은 이야기 같습니다. 이윽고 조금은 익숙한 이름들이 등장하는데 베드로, 야고보 같은 이름입니다. 성경을 잘 읽어보지 않았더라도 우리나라처럼 교회가 많은 곳에서 그래도 한번쯤은 예수의 열 두 제자 중 한 두명의 이름은 상식이 되어버리지 않았나 싶네요. 아 이제 점점 감이 잡혀갑니다. 예수를 일러바치고 있구나. 그런데 이상합니다. 내가 알고 있는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 고귀하고 성스러운 사람이며 기적을 행하고 다닌 사람인데요. 주인공은 어찌나 억울한지 울분을 토해내며 성인 예수를 나리에게 고자질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그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상세히 하나하나 설명해주면서 말이죠. 이 억울한 사람의 호소를 듣고 있다 보니 공감가는 점이 있기도 한 반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좀 이상한 점도 있기도 합니다.  예수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서 평생을 함께 살고 싶다면서, 갑자기 얼른 잡아가라고 호소하는 식으로 말이죠. 주인공 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살펴볼까요.

레오나르도 다빈치 최후의 만찬 (출처:http://www.puzzlesarang.com/shop/data/goods/big/1108-15b[2].jpg)

그를 죽여 달라. 그는 나의 스승이자 나의 주인이다. 하지만 나와 같은 나이이다. 나는 그 사람이 시키는 것을 모두 잘 해냈다. 이를테면 하루하루의 잠자리나 먹을거리 모두 내가 고생하면서 구해온 것들이다. 그런데 그 사람은 물론 다른 제자들도 고맙다는 소리 하나 없다. 나는 그러나, 그런 것을 가지고 쩨쩨하게 원망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는 이런 나에게 마음을 열어 준 적이 없다. 그렇지만 나는 누구보다 그를 사랑한다. 그는 나의 것이다. “그 사람을 남의 손에 넘기느니, 차라리 그 전에 내가 죽여 버리겠어” 145쪽 사람들이 모두 그를 보며 환호하지만 그의 거짓말은 곧 들통날 것이다. 가난한 농사꾼 여자 마리아가 무례하게도 그에게 향유를 쏟아부었을 때 나는 그녀를 심하게 나무랐다. 그런데 그는 오히려 그녀를 옹호하며 나를 무안하게 만들었다. 그 순간 나는 그의 눈빛에서 연정을 읽을 수 있었다. 이게 무슨 추태인가. 정말 추태의 극치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마르다가 순수하고 아름다운 처녀라고 생각하기는 한다. 아니 내가 지금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거지?

마르다의 여동생 마리아는뼈도 가늘고 피부는 투명하게 맑고 손발은 포동포동하면서도 자그마하고 호수처럼 맑고 깊은 큰 눈은 언제나 꿈꾸듯 황홀한 눈빛으로 먼 곳을 바라보고 있어서 그 마을에서는 어떻게 저런 아이가 태어났는지 모두 이상하게 생각할 정도로 기품이 있는 처녀입니다. 저도 생각하고 있었죠. 시내에 나가면 하얀 비단 같은것이라도 슬그머니 사다 줄까하고. 아아, 이젠 뭐가 뭔지 알 수가 없군. 내가 지금 무슨 얘길 하고 있는거지? 그렇지, 저는 분한 겁니다.” (인간실격, 민음사, 직소 149쪽) 갑자기 그를 사랑하는 나의 마음이 마리아에 대한 질투, 그에 대한 질투로 옮겨갑니다. '나'의 호소는 광기를 더해가며 계속됩니다.

나는 그가 끝났다고 생각한다. 그가 예루살렘에 가서 그에게 환호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화를 내며 축제를 망쳤기 때문이다. 그가 더 이상 추해지기 전에 그를 죽여야겠다고 마음먹었지. 그가 나를 비롯해 모든 제자들의 발을 직접 제 손으로 씻겨줄 때 나는 마음을 고쳐먹었었다. 다시 순수하게 그를 사랑하겠어. 그렇지만 그는 이내 이 중에 배신자가 있다며 나를 지목한다. 이렇게 모욕감을 주는 방식으로 나를 지목하다니. 나는 뛰쳐나와 그 길로 이렇게 호소하러 달려 온 것이다. “나는 그 분을 사랑하지 않아. 처음부터 티끌만큼도 사랑하지 않았어. , 나리. 저는 거짓말만 했습니다. 저는 돈이 탐이 나서 그분을 쫓아다녔던 것입니다저는 쩨쩨한 장사꾼입니다제 이름은 장사꾼 유다. 헤헤. 가롯 유다입니다.  (인간실격, 민음사, 직소 162쪽)

가장 먼저 상기해야 하는 것은 직소는 종교서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비록 예수와 유다를 비롯한 그의 열 두 제자가 등장하지만 종교적,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글이 아닌 다자이 오사무가 지어낸 허구의 소설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성경에서는 예수가 유다를 배신자로 지목하지 않습니다. 다만 가서 네 할 일을 하라라고 할 뿐입니다. 따라서 이 부분은 허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유다의 입장에서 쓴 많은 부분이 다자이 오사무가 지어낸 허구의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재미로만 허구적인 이야기를 지어낸 것은 결코 아닌 것 같습니다. 성경에 근거한 이야기 구성과 유다의 심리를 고려한 전개, 그리고 성경구절 인용은 물론 성경에서 기술하고 있는 배경을 사용한 것은 성경을 많이 공부하지 않았다면 절대 풀어 낼 수 없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죠. 유다의 심리 전개 또한 대단한데요. 고귀한 예수를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했지만 이내 나와 동갑이며 별반 다르지 않다고 질투하였고, 죽이고 싶다며 증오하였습니다. 그렇게 애정과 증오를 반복하며 느끼다가 내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지하며 광기어린 자신을 인식하는 부분은 한 인간의 심리가 어떻게 변해가는지 탁월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몰입감을 안겨줍니다. 돈 때문에 배신했다며 자학하는 부분까지 이어지는 유다의 심리변화를 다자이는 탁월하게 묘사한 것 같습니다. 순수한 진리에 대한 열망, 그리고 결국 그것에 다가갈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다자이는 표현하고 있던 것 같습니다. 직소의 유다. 광기어린 말투로 호소하고 예수를 고자질하는 인물. 마지막에는 결국 돈 때문에 배신하는 것이라며 고백하는 비열한 인물. 그러나 나는 그가 비겁하게만 느껴지지는 않았습다. 오히려 불쌍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예수가 여러 기적을 행하고 다닐 때 먹을거리, 잠자리 구하기 등 현실적인 어려움을 타파해 준 사람이 누구인지, 열 두 제자 중 유다만큼 유능한 실무자가 어디 또 있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말이죠. 물론 유다의 말만 듣고 그를 두둔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지만, 예수가 그를 한번만이라도 따뜻하게 격려해줬다면 과연 유다가 그를 배신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게다가 예수가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는 부분에서 유다는 거의 마음을 바꾸었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궁금한 것은 그 당시 일본에서 사람들이 기독교를 어떻게 인식하고 이해하고 있었을 지 입니다. 대대로 천황제를 고수했던 일본이 현대화를 지향하고, 전쟁에 지면서 어떻게 분위기가 흘러 갔을 지, 서양의 종교인 기독교를 어떻게 생각했을 지 숙제로 남기며 감상을 마칩니다. 성경이 아닌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직소감상문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하며

 

written by 유럽겉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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